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은 늘 존재했습니다. “이 직업으로 나는 신분 상승이나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도 과거처럼 계급이 나뉘어저 있지는 않지만, 소득에 따라 중상층, 고소득층으로 분류하여 많은 제도들이 생기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신분제가 강했던 조선시대부터, 오늘날 평등을 표방하는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직업은 계층 이동의 수단이자 제한의 장벽이 되어 왔습니다. 오늘은 대표적인 전통 직업군인 관료(관직), 장인(기술직), 상인(유통업)을 중심으로, 이들 직업이 어떻게 계층 상승 혹은 고착을 만들어냈는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관료 – 시험을 통과하면 ‘출세’, 하지만 누구나 될 수는 없었다
관료는 조선시대와 근현대를 아우르며 가장 확실한 계층 상승 통로로 여겨졌습니다. 관직 진출은 곧 권력, 경제력, 명예를 동반하며, 사회 상층으로의 진입을 의미했습니다.
① 조선시대 관료: 과거제를 통한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
조선의 국가이념은 성리학이었으며 지식과 도덕을 겸비한 인물을 통치의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조건을 검증하는 제도가 과거시험이었고, 문과와 무과를 통해 관료를 선발했습니다.
성공적으로 과거에 급제하면 9품~1품으로 나뉘는 품계를 받아 벼슬을 시작하게 되었고, 3품 이상부터는 고위 관직으로 사회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회의 불균형에 있었습니다. 즉, 관료가 되는 것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루트이자, 동시에 제한된 루트였던 셈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양반 가문은 교육 기회와 재정 여력이 충분했기에 과거시험에 유리
- 중인이나 상민이 과거에 합격해도 출신으로 인한 차별 존재
- 기술직, 상업직 종사자는 응시조차 어려웠거나 배제됨
② 현대 관료직: 행정고시 → 공무원 → 정책 엘리트의 사다리
근현대에 들어서는 고시 제도가 새로운 계층 상승 수단이 됩니다. 1960년대 이후 행정고시·사법고시·외무고시는 대표적인 ‘엘리트 코스’로 자리 잡으며, 이 시험을 통과하면 고위직 공무원이나 법조계, 외교관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학벌 기반 사회에서 실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 길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서울대·고려대 출신 비서울권 출신들이 고시에 도전해 출세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고시에 합격하지는 못했고, 이로 인해 젊은 시절을 고시 준비하며 독방에서 10년 이상 공부만 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고시폐인'도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고시 제도가 폐지되거나 축소되며, 공무원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 수단이기보다 안정적인 중간 계층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장인 – 기술로 살아남지만, 높이 오르긴 어려웠던 계층
장인은 사회에서 필수적인 기술을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계층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는 제한적인 가능성만을 제공했습니다. 기술은 존중받았지만, 사회적 위상은 제약이 많았습니다.
① 조선시대 장인: 필요하지만 천시된 기술직
조선시대의 장인은 대장장이, 목수, 도자기 장인, 화원, 악기 제작자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이들은 국가 공예 관청(장인청, 장악원, 도화서 등) 소속으로 국가 업무를 맡기도 했고, 지역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중인 또는 천민 계층으로 분류되어, 과거 응시 자격이 없거나 제한되었으며, 자식들도 같은 직업을 세습해야 했습니다. 즉, 장인은 실력은 있었지만, 사회적 인정이나 계층 상승은 매우 제한적이었던 직업군입니다.
- 도자기 장인은 세계적 명품을 만들어도 양반보다 낮은 대우
- 화원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관직이 아닌 기술공으로 분류
- 군기 제조 장인도 국방 핵심 인력이지만 출세의 기회 없음
② 현대 장인: 기능장 → 명장 → 스타 장인으로의 전환
현대에는 기능사, 기사, 산업기사, 기능장 등의 국가 자격제도가 생기며 기술직의 위상이 일부 회복되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명장, 무형문화재 보유자, 장인 브랜드(예: 김봉남 도예 등) 등의 경우 기술이 곧 명성과 자산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스타 셰프, 자동차 정비 유튜버, 건축 디자이너 등 기술 기반 직업이 SNS나 브랜드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장인 계층의 대부분은 낮은 임금, 불안정한 근로 환경에 놓여 있으며, 사회적 존중과 보상은 일부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기술을 지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큰 강점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상인 – 부는 쌓았으나, 신분 상승은 멀었던 길
상인은 자본과 유통을 통해 사회 경제를 실질적으로 움직였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그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웠고, 근대 이후에야 직업적 명예가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① 조선시대 상인: 부유했지만 천한 직업으로 분류
유교 사회 조선에서 상업은 ‘사농공상’ 중 가장 아래로 분류되었습니다. 상인은 이윤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이기적, 탐욕적이라는 낙인을 받았고, 관직 진출이나 사회적 지위 상승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규모 유통망을 장악한 대상(大商) 들이 존재했습니다. 상인은 돈은 많았지만 존경받지 못한 직업군이었고, 부자이면서도 신분 상승에는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오늘날과는 매우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은 '자본'을 가진 '자본가'가 가장 큰 부와 명성을 가지게 된 시대입니다.
- 송상(개성상인), 만상(의주), 경강상인(한강 유통) 등은 자금력과 네트워크 보유
- 일부 상인은 관직자와 결탁해 특권화된 유통을 형성
- 그러나 자식들이 과거 응시하거나 양반 대우 받는 것은 불가능
.
② 근현대 상인: 자본가 → 기업가 → 스타트업 CEO로 재정의
근대 이후 자본주의가 도입되며 상인은 사회의 중심으로 등장합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기업 창업자와 유통업자, 무역업자는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었고, 정주영, 이병철 같은 창업 1세대 상인 출신 기업가는 경제 권력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현대에는 스타트업 창업, 이커머스 플랫폼, 1인 쇼핑몰, 크리에이터 커머스 등 상업 활동의 형태가 다양화되며, 개인이 기업처럼 활동하는 상인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인지도, 부, 영향력을 동시에 갖춘 신계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계층 상승이 가장 현실적인 직업군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단, 격차도 심해 상위 1%를 제외하면 자영업의 실패율, 과도한 경쟁, 플랫폼 종속 등의 문제가 동반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공부' 보다는 자신만의 '기술' 과 '능력', '사업 아이템' 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부를 가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관료만이 실질적인 신분 상승이 가능한 유일한 루트였으며, 장인과 상인은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제도적으로 한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장인도, 상인도, 심지어 크리에이터도 능력과 기획력, 시장 대응력에 따라 사회적으로 상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다만 여전히 기회의 격차는 존재합니다. 교육 자원, 자본, 정보 접근성, 지역 인프라 등에 따라 직업 선택의 폭과 성공 가능성은 크게 달라집니다. 직업은 계층 상승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사회 시스템과 제도의 보완 없이 모든 이에게 공정한 사다리를 제공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직업군 자체보다도, 사회가 얼마나 그 직업에 정당한 보상을 주고, 이동 경로를 열어주느냐에 있습니다.
직업을 통한 계층 이동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평등한 사다리’인지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