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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경성 직업 차이 (한양, 부산, 평양)

by 날아라우후훗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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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 같은 민족이라도 지역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직업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다릅니다. 특히 조선시대 한양(서울), 일제강점기 경성(서울), 그리고 지방 도시였던 부산과 평양은 각기 다른 역할과 경제 구조를 가지며 직업적 특징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의 수도 한양과, 산업화 및 식민지 중심지였던 경성을 중심으로, 시대별 지역별 직업 구조의 차이를 살펴보며 한국 직업 문화의 뿌리를 알아보겠습니다. 

 

조선과 경성 직업 차이 (한양, 부산, 평양)
조선과 경성 직업 차이 (한양, 부산, 평양)

조선시대 한양 – 신분이 곧 직업인 유교 사회

조선의 수도 한양은 국가 권력이 집중된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동시에 유교적 질서가 강한 신분이 곧 직업을 결정하는 사회 구조였습니다. 

  1. 양반 중심의 관료직
    한양은 중앙 관직자들의 도시였습니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은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나아갔으며, 이들이 차지한 직업은 대부분 정치, 행정, 교육 등 지식 기반 분야였습니다. 유교 경전을 암기하고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는 것이 중요한 교육이었습니다.
  2. 중인과 기술직의 발달
    한양에는 역관, 의관, 서리 등 중인 계층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특정 기술이나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의학, 건축, 통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습니다. 특히 궁중의술, 도성 설계, 통신 업무 등은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신분적으로는 양반보다 낮은 지위였습니다.
  3. 상업과 수공업의 제한적 활동
    조선은 농본주의 국가로 상업을 천시했고, 특히 한양은 관청 중심 도시였기에 상업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남대문, 동대문 등 일부 시장에서 활동하는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있었지만, 경제의 주체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국가에 소속된 장인이었습니다.
  4. 여성과 직업의 제약
    한양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질서 아래 직업 선택에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일부 기생이나 무당 등의 직업 외에는 공개적으로 생업에 종사하기 어려웠으며, 가내 수공업 형태로 제한된 활동만 가능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은 신분제에 따른 계급적 직업 구조가 명확했습니다. 정치와 학문 중심의 직업이 우세했고, 경제활동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 – 식민지 권력 중심지의 신직업 구조

1910년 이후, 조선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되며 기존의 전통 직업 체계가 붕괴되고 서구식 자본주의적 직업 체계가 도입되었습니다. 경성(현재의 서울)은 그 중심에 있던 도시입니다.

  1. 일본인 중심의 고위직 독점
    일제는 경성을 조선 총독부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일본인들이 고위 관료직과 전문직을 독점했습니다. 경찰, 군인, 철도청 직원, 금융기관 종사자 등은 대부분 일본인이 차지했으며, 조선인은 하위 관리직이나 단순노동에 머물러야 했던 뼈아픈 시대였습니다. 
  2. 근대 산업과 회사원 직업군의 형성
    경성에는 은행, 철도국, 방송국, 병원, 학교 등 근대적인 조직이 등장하며 새로운 직업군이 형성되었습니다. 회사원, 기자, 우편 배달부, 교사 등 근대적 서비스 직업이 등장했고, 일부 조선인 청년층은 이를 통해 계층 이동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근대식 교육을 받은 조선인 여성들이 간호사나 교사로 취업하는 사례도 증가했습니다.
  3. 도시 노동자 계층의 등장
    철도 건설, 전차 운전, 창고 관리, 인쇄소 직원 등 도시 인프라를 지탱하는 직업이 늘어나면서 노동자 계층이 경성 내에서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농민과 상공업자 중심의 직업 구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4. 상업의 확대와 자영업의 시작
    일제는 상업을 장려하며 경성을 일본식 시장 구조로 전환했습니다. 종로, 명동, 충무로 등지에는 백화점, 은행, 영화관, 찻집 등이 생겨나며 상업이 번성했고, 조선인도 상점 운영이나 장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경성은 조선 전통 사회에서 벗어나, 근대적 직업 구조와 도시화된 직업군이 등장한 전환의 공간이었습니다. 신분보다는 교육과 언어(일본어) 능력이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역 도시 부산·평양 – 항구와 공업 중심지의 직업 다양성

수도인 경성(현재의 서울) 외의 지방 도시인 부산과 평양도 당시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직업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두 도시는 항구와 공업이라는 산업 기반 위에서 도시 직업군을 형성하며 지역 특색을 보였습니다.

  1. 부산 – 무역과 항만 노동 중심의 직업 구조
    부산은 일제강점기 최대 항구도시로 성장하면서 항만노동자, 해운회사 직원, 세관원, 통역사 등의 직업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어업·농산물 집산지 역할을 하면서 운송업과 유통업이 동시에 발전했습니다. 부산은 전국 각지에서 인구가 몰리며 다양한 직종이 생겨난 다문화 직업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2. 평양 – 공장과 섬유산업 중심의 공업도시
    평양은 경공업 중심 도시로, 방직공장, 제약회사, 식품가공 등 공장노동자가 직업의 중심을 이뤘습니다. 여성 노동자도 많이 고용되었고, 기업식 운영이 일반화되며 ‘출근’이라는 개념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평양은 특히 기술직을 강조했으며, 조선인 기술자가 일본인 관리자 밑에서 일하는 이중구조가 존재했습니다.
  3. 지방 상업과 민간서비스 확대
    두 도시 모두 상업과 유통이 활성화되며 자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포목점, 주점, 음식점, 목욕탕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 직종이 늘어났고, 이들 중 일부는 근대 상공업으로 전환되며 계층 이동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부산과 평양은 수도권과 달리 산업 중심의 직업 구조를 형성하며 노동 중심의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산업 기반 형성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한양, 일제강점기의 경성, 그리고 지방 도시 부산과 평양은 각각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직업 구조와 계층의 본질이 달랐습니다. 한양은 신분이 직업을 규정한 도시였고, 경성은 식민 지배 속에서 근대 직업 구조가 생겨난 도시였습니다. 부산과 평양은 산업 중심지로서 노동 중심 직업이 확산되며 경제의 실질적 주체가 등장한 곳입니다.

이처럼 지역과 시대는 직업의 다양성과 선택 가능성, 사회적 의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 사회에서 직업의 유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과거 직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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